매일성경묵상나눔

언어가 다른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by PastorKang posted Jun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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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다른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배그’를 아는가?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이다. 교회의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가 이 게임을 엄청 잘 하는 듯하여, 나도 함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예상과 달이 이 아이는 “목사님이 게임을 하네?”라는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게임을 정말 못한다. 사실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게임할 시간에 글자 하나 읽거나 영상을 하나 보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아이의 폰을 받아 게임은 시작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비행기에서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착지 해야 할지, 전혀 몰랐지만 이 아이가 친절하게 도와주어 육지에 잘 착지 했다. 그 다음에도 문제였다. 현란하고 실제 같은 그래픽에 감탄만 했지, 도대체 뭘 해야 하고,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도 역시 이 아이가 도와주었다. 이번에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깜짝 놀랐다. 평소에 이 아이가 말하는 수준은 “네” 정도였는데, 이렇게 말을 잘하고 아는 것이 많은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무슨 소리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고, 그저 “아, 그렇구나!”라고 분위기만 맞춰줄 뿐이었다. 잠시 배그를 같이 했는데, 나만의 착각일 수 있어도 이 아이와 많이 친해진 느낌이 확 들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세대의 언어가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세대와 세대가 소통하려면 말이 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맞추기는 힘들어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소통을 위해서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아니, 그래야 접촉점을 가질 수 있고, 비로소 소통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낮은 곳으로 가서 그들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섬기는 진실한 액션 없이는 소통을 위한 시작도 없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신념을 강요한다고 그것에 설득되는 것이 아니다. 힘의 원리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그런 척 해주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자신이 소통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 해서는 안 된다. 배려와 공감, 그리고 진실한 섬김으로 그네들의 자리로 들가야 비로소 말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고전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