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말하기 연습

by PastorKang posted Jan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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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연습”

 

두 아이들이 학교에서 토론, 발표, 스피치를 하는 경우들이 많기에 ‘말하기’에 대해서 코치할 때가 있다. 처음부터 ‘말하기’를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하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내용과 확신, 목소리 톤과 속도, 표정과 제스처, 시선과 공감력, 감동과 도전, 뭐 이런 전방향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들 중에 ‘생각하고 말하기’, ‘먼저 이해하고 말하기’에 대해서 강조하곤 한다. 

 

발표나 스피치의 경우, 생각없이 말부터 하는 습관은 실수를 낳는다. 중간중간 말이 끊기기도 해, 듣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깨뜨린다. ‘음…’, ‘어…’ 이런 음성어들은 의미없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 신뢰, 공감력을 저하시킨다. 생각하고 말하면, 의미없는 음성어들은 사라지고, 말 실수로 인한 오해와 상처와 관계의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 먼저 생각한 후에 말을 해도 늦지 않다. 생각으로 생기는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은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할 수 있다. 책의 여백이 주는 여유와 집중력의 효과와 비슷하다. 

 

먼저 이해하고 말하는 습관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화나 토론 그리고 일상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먼저 이해하고 말하는 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권위자, 상사, 리더, 연장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연습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는 것, 명령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상대의 마음과 소리를 먼저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관계와 분위기는 엄청 좋아질 것이 확실하다. 상대가 말하는 진짜 의도와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말만 하면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겠는가? 잘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되는 경우들이 상당하다. 잘 듣고, 몇 개의 질문만 해도 충분히 소통하고, 공감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갈 수 있게 한다. 

 

‘생각하고 말하기’, ‘먼저 이해하고 말하기’의 습관을 만들어 보라. 그 삶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다양한 만남과 관계에서 여유과 평화와 회복과 치유와 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말하기 연습’은 단지 말 잘하는 사람,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감동과 치유와 회복을 주고, 건강한 관계와 삶을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에게 나아와 구한다. “주님 원하신다면 나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아니다. 깊이 생각 한 후에 말한 것이다. 나병 환자는 격리 되어 지내야만 했는데 예수님에게 나왔다는 것은 맞아 죽을 각오, 어떤 상황에 처해도 해야겠다는 결단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 깊은 생각과 결단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와 구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의 반응도 동일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댈 수 없는 규칙을 깨뜨리고 그 사람에게 손을 대었다. 예수님은 죽을 각오를 하고 구한 이 나병 환자의 마음을 이해했고,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반응하며 말했다. “그래, 나도 원한다. 네가 깨끗함을 받고 나병이 나았다.” 이 나병 환자와 예수님은 소통 했을 뿐만 아니라 공감 했고, 그로부터 이 나병 환자는 치유와 건강한 일상의 삶의 회복을 누릴 수 있었다. 단지 말 잘 하는 사람인 아닌, 말로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는 ‘생각하고 말하기’, ‘먼저 이해하고 말하기’의 습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눅 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