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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 하나님 나라의 특성이 아닌가?

by PastorKang posted Ap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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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 하나님 나라의 특성이 아닌가?”

 

고대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개방성’에 있었다. 로물루스의 로마 건국부터 로마는 오는 자는 누구든지 환영했다. 고대 로마 시대는 이민족이라 할지라도 충성심과 능력이 있으면 출세 할 수 있었고, 심지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했다. 다섯 명의 탁월한 황제, 오현제의 시대(서기 96~180년)는 고대 로마 제정 시대의 황금기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황제가 자신의 아들에게 제국을 물려주지 않고, 탁월한 사람을 양자로 삼았고 그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었기에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오현제의 마지막 왕,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양자가 아닌, 망나니와 같았던 아들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 주었고 그로부터 로마 제국은 쇠퇴하고 위기에 처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개방성이었는데,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멸망 했던 요인 중의 하나는 그 개방성을 포기 했기 때문이다. 개성성 때문에 성공했는데, 그 개방성을 포기하니까 멸망에 이른 것이다.

 

자유와 정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강조하는데, 자신과 다른 삶의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같은 생각을 갖고 동조하는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좋아하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의 생각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와 삶의 배경과 과정이 상당히 달라도 지금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것, 그리고 과거의 부끄러운 허물이 있었을지라도 새롭게 변화된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고자 하는 것은 성숙한 자가 할 수 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은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선입견과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비록 과거에는 부끄러운 허물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 자신을 보면 그래야만 하는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죄와 허물이 많았던 내가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 사람을 볼 때 과거가 아닌 지금의 모습에 집중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성격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좋은 변화는 분명하게 있다.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죄인들이 모인 죄인들의 집합체이다. 거기서 “누가 더 의롭고 깨끗하고 괜찮은가?”는 정말 쓸모 없는 이야기이다. 큰 죄인, 중간 죄인, 작은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두 똑같은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위에 세워지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교회는 오는 누구든지 환영할 수 있고,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변화될 수 있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을 수 있다. 거기에 선입견과 편견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이 작용하니까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면 의외의 사람들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개방성,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본적인 특성이 아닌가. 개방성을 밀어내고 폐쇄적인 상황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안주의식과의 싸움은 계속된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교만하여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출 9: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