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생각하고 말하기

by PastorKang posted Feb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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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말하기”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공의가 빠진 선을 넘은 사랑은 물렁물렁하여 선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사랑이 빠진 지나친 공의는 너무 딱딱해서 선한 것에 사용하기 어렵다. 완전한 하나님이고, 완전한 사람이었던 예수님만이 그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어떻게 내가 그 조화와 균형을 잡을 수 있겠는가.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완벽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보여준 절정이다. 그럼에도 그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공의보다 앞서 행한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길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도 완벽하게 성취된다. 사랑보다 공의가 먼저 적용되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 했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해 주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온전한 공의를 위해 작은 역할을 감당한다.

 

나는 공의롭지 않고, 그렇게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정의로운 것처럼 보여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죄인이고, 연약한 존재이다. 나의 유익과 만족과 권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분노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데, 마치 그것을 정의로운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다. 말을 많이 할수록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 조금 더 부풀려 말하기 쉽다. 조금 더 극적인 효과가 있어야 반응이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적당히 과장하여 말하기 쉽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존중하고 따라주면, 내가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처럼 착각하고 교만하기 쉽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편견과 오만의 틀 속에 갇혀 진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한다. 소유와 하는 일보다 존재가 먼저라고 말하지만, 그 말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잦아진다. 하나님의 공의보다 사랑이 먼저 앞서 행하여 지금 내가 존재하고 살아간다. 자,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잘 만들어 가자. 이것은 지금보다 말을 더 줄여야 가능하다. 이성적 판단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것에 먼저 관심을 갖고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더욱 온전하게 세울 수 있고, 오만과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