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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이 안주의식을 깨뜨린다

by PastorKang posted May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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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이 안주의식을 깨뜨린다”

 

적응력이 커지는 것과 안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적응력을 키우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안주하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다. 적응력은 자기 권리와 기질을 내려놓고 상대를 배려하지만, 안주는 다른 것을 배려할 필요 없이 자기 생각과 권리만 누린다. 적응력은 어떻게든 함께 하여 성과를 만들어 내고자 하지만, 안주는 ‘함께’라는 단어와 전혀 상관없고 그로 인한 어떤 성과도 기대하지 않는다. 적응력은 인내와 끈기 그리고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안주는 그런 것들 없어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적응력은 갈등 상황에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안주는 갈등 상황 자체를 피해 다닌다. 그래서 적응력이 커진다는 것은 인격과 실력에 있어서 변화와 성장을 말하지만, 안주하는 삶은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퇴보하기 마련이다.

 

적응력을 키우는 삶과 안주하는 삶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간절함, 절실함이다. 똑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간절한 마음과 자세는 적응력을 키우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별 기대감 없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과 자세는 안주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절박한 위기의 상황인데로 적당히 안주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은 심각한 상태이다. 안주의식에 빠지면 지금 이 절박한 위기의 상황도 위기로 보지 않고 대충 넘기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안주의식에 빠지면 자신의 역할을 모르고, 역할을 모르니 책임도 지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은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정말 교만하여 우월감을 가지면 안주의식에 빠지고, 교만하여 열등감을 가지면 실패의식에 사로잡혀 삶이 망가진다. 망가지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불편한 삶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안정감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안주하는 삶이 쉬운가? 아니면 변화와 성장을 위한 적응력을 키우는 삶이 쉬운가? 당연히 후자이다. 안주하는 삶은 노력하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죄를 범하는 것처럼 안주하는 삶은 본성을 거스리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응력을 키우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하고 깨어 있어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안주하려는 본성에 대항하여 살아가야 하기에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은혜의 생명으로 하나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의 속도와 열매는 다를 수 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안주하는 삶은 더 이상 성장하기 않겠다는 결정이다. 그 삶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같은 상태가 아닌가. 하나님이 준 은혜의 생명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얻은 것인데, 어떻게 적당히 안주하며 숨만 쉬며 그 인생을 소비할 수 있겠는가. 그 부끄러운 삶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믿음의 선택과 의지의 헌신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한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 1: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