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오늘을 멋지게 살아내고 내일을 기대하기 위해

by PastorKang posted May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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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멋지게 살아내고 내일을 기대하기 위해”

 

몽테뉴는 에세이 <식인종에 관하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 나라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 되고 완전해 보일 수 있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완전히 그릇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관습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야만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전쟁으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시련을 겪었던 1540~1660년의 시대에 몽테뉴 뿐만 아니라 정치 철학자들은 종교에 대한 회의와 종교적 관용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고난의 시간을 견디면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과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모든 고난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고난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그것을 통해 느끼고 배우고 깨닫고 대안을 찾기 위해 도전하기 때문이다. 넘어짐과 같은 실패도 그렇다. 실패가 배우고 성장하는 도구로 쓰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좌절과 절망과 우울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인생의 스토리는 직선적인 상승이나 하강이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평지가 있으면 골짜기가 있다. 잘할 때도 있지만 잘못할 때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와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으로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평정심을 회복하고 있는 모습, 상황 그대로를 인정하고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목표를 바라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머물러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있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성찰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교만하지 않고, 과거의 상처에 빠져 절망하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것이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과거를 바라보며 미화하지 않는다. 최대한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새로운 오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 부끄러운 허물에 대한 인정과 용서 구함, 서운하고 아쉬운 것에 대한 정직한 표현, 반복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한 삶의 돌이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의지적인 노력이 새로운 오늘의 시작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진지한 성찰 없이 대충 넘어가면 새로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인격과 물리적인 영역에서 변화와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은 정직하게 고백하고 관계를 회복해도 뒷끝이 남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한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니 과거에 머물러 살지 말고, 오늘을 멋지게 살아내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삼상 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