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인정과 칭찬으로

by PastorKang posted Jun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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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인정과 칭찬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최선이 아닐 수 있고,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함께 하는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자세이다. 자신이 리더라면, ‘라떼는 말이야’로 따르는 이들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뜻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자세로는 일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소통과 공감은 부재하고, 리더십의 진정한 권위와 존경은 사라진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통과 공감이 풍성하고, 진정한 리더십의 권위를 세우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한 후에 비전을 공유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신념에 따라 자녀들을 통제하고 주도하는 습성이 있다. 자녀의 상황과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만, 부모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해할 수 없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적당히 버리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대체하곤 한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할 때에는 어떠한가? 참 많이 다르다. 그네들의 시대와 손주의 시대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인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삶으로 경험해 알고 있다. 그저 손주의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고 행복하고 좋기 때문에 그네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이렇게도 하는구나!”, “이렇게 해도 좋구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신념을 손주에게 적용 하기보다 오히려 손주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부모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엄청난 친밀감과 변화와 성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과 자세로 리더가 함께 하는 이들, 따르는 이들을 대하면, 일의 효율성과 소통과 공감은 높이지고, 리더십의 권위와 존경을 자연스럽게 따르기 마련이다.

 

리더십은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지 다 잘하는 리더십이라 해서 권위와 존경이 저절로 따르는 것도 아니다. 리더십의 역할은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세우고, 그런 이가 부족하다면 역량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을 훈련하여 세워가는 것이다. 리더십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가 있을 때, 시기와 질투가 아닌 인정과 칭찬과 감사함으로 세워갈 수 있어야 한다. 리더십은 절대 군주가 아니다. 리더십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충실할 때 존경과 권위가 나타난다. 그런데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리더십은 그들을 내치려 한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사울이 다윗을 끝까지 없애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기와 질투는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한다. 어두워진 눈으로 어떻게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옳고 의로운 것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죄인의 근본 속성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누구든지 이것에서 예외가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시기와 질투를 밀어내고 부모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더 탁월하고 잘 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는가? 자신의 일보다 몇 배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자녀의 잘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부모가 어디 정상인가. 리더십보다 탁월한 사람이 있다면,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기뻐하면 상황은 간단해진다.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삼상 19: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