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앞뒤의 문맥과 전체를 이해하고

by PastorKang posted Sep 06,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앞뒤의 문맥과 전체를 이해하고”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대안이 존재할까?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그것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그 대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적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비판의 소리에 대한 대안으로 또 다른 제안을 하고, 그것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보이는 것만 보면, 이것은 의미없는 에너지 소비나 시간 낭비와 같아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안과 비판 그리고 또 다른 제안과 또 다른 비판, 이런 과정이 거듭 되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그 대안의 유익도 처음부터 훨씬 더 넓혀 가며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포함한 성숙한 제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제안에는 나의 생각과 의견이 포함 되었기에 그 제안은 더 이상 그 사람, 그들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되어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이것이 공동의 목적과 제안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정의롭지 않고, 용기도 없고, 의지도 연약한 존재이기에 작은 문제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감정적인 무너짐과 함께 육체와 일상의 삶도 깨어지곤 한다. 문제와 위기 앞에서 무너지고 깨어지는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때 도망가 숨고 싶지 않은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의 자리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니 정의로운 척, 용기 있는 척, 의지가 강한 척을 하며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의 자리에서 감정과 육체와 생각과 삶을 잘 통제하며 여유 있게 말한다. ‘뭐,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그런 모습을 보면 용기와 의지와 지혜가 충만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웬걸. 위기가 찾아오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그런 용기와 의지와 지혜를 찾을 수 없다. 이전과 비슷하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생각이 무너지고, 부정적인 판단과 현실에서 도망가 숨을 곳을 찾는다. 이전보다 별로 성장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위기와 문제 앞에서 무너지고 좌절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자신의 강함과 담대함 그리고 지혜와 정의에 대해서는 결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 줄로 착각 했다가 넘어지면, 정신이 바짝 든다. 저 사람보다,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힘을 주지 않는다. 함부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죄인이고, 여전히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고 고백한다. 여유 있는 삶에서는 멋지게 말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큰 위기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읽을 때에는 앞뒤 문맥을 살피고, 더 크게 글 전체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글쓴이의 목적과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바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글 뿐만 아니라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꼭 필요한 자세이다. 백 개가 넘은 그 사람의 이야기 중 하나만 택해서, ‘이것이 이 사람이다.’라고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전혀 선하지 않다. 그렇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아주 못된 시도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전설적인 지도자 모세도 그랬다.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칭찬이다. 모세의 행적에서 그의 분노를 찾아낸 사람은 그 평가에 대해서 항의하고 비난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온유에 있어서 엑셀런트이다. 사람이나 상황도 앞뒤를 잘 살피고, 그 인생 전체를 이해해야 비로소 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잘못한 것은 분명하게 잘못한 것임을 용기 있게 말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죄에서 돌이킨 것은 긍휼이 여기며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운 허물과 죄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충성하는 것은 인정하고 계속해서 잘 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