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2023.02.07 12:06

공감이 행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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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행복으로”

 

누가 슬픈 마음 있는 자를 위로할 수 있을까? 누가 그 슬픔의 자리를 견뎌내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까? 어떤 말로도, 어떤 보상으로도 그 슬픈 마음을 위로할 수 없지만, 그와 같은 슬픔을 경험한 이들이 함께 하며 손을 잡아주면 엄청난 위로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 슬픈 마음을 아는 자가 슬픔에 함께 하며 안아줄 때, 그 슬픔은 반이 되고 외롭고 어두운 곳에서도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다. 어떤 말과 보상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그 슬픔에 마음이 매여 함께 울고,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선이다. 동병상련이 아니어도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그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주는 위로자로 쓰일 수 있다.

 

아퍼서 죽겠는데, 슬픔에 잠겨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아프냐?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도록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고, 위로와 도움이 되겠는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일과 관계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지쳐 힘들었을 때도 그렇다. ‘문제가 뭐야? 누가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데? 그래 잘 됐네. 이 참에 그만 둬!’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더 큰 상처와 거절감과 절망을 안겨줄 뿐이다. 어떻게 해야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렇구나! 많이 힘들지, 내가 안아줄게.’ 그렇게 말 없이 꼭 안아주고 함께 우는 것이다. 흐느껴 울기도 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어도 좋다. ‘자기야, 나는 언제가 자기 편이야! 내가 항상 함께 할 거야!’ 이렇게 말하고 그 내면의 생각과 감정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어떤 해결책이 없어도 괜찮다. 아프고 슬픈 고통에 혼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함께 것으로도 외로움과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깨어지고 무너지고 상처입은 마음과 감정을 공감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주고 것으로 자존감과 존중감을 높일 수 있다. 자존감의 상승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딜 수 있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능력과 지혜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런 공감과 위로, 사랑과 긍휼, 존중과 신뢰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 이 소중한 가치와 위대한 능력을 알고, 이런 가치들로 가득한 가정과 커뮤니티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자로 자라가는 것이 가능할까?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어느 때에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한 경험을 하고,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데, 이들이 이 세상의 가치 속으로 들어가 그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지 않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섬기며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의 생각과 감정으로는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공감과 위로, 사랑과 긍휼, 존중과 신뢰, 섬김과 희생의 정신으로 이 세상에 들어가지만, 주변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상처 입고 고통 당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욱 사랑하고 섬기려 한다. 그렇다고 전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서는 입을 열고 움직이지만, 손해가 되는 일과 힘겨운 일들은 모른 척 하고 뒤로 물러난다. 심지어 거짓과 속임으로 비난한다. 이 세상에 못된 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점점 더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남들처럼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다. 살아남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책임 지지 않기 위해 철저히 개인주의에 고립된다. 아니 심각한 이기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이 편해진다. 불의한 것도 나랑 상관없으면 관심없고, 슬픔을 당한 자를 보아도 내 책임이 아니면 모른 척한다. 문제가 있으면 살피고 해결 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고 남탓이나 변명한다. 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길 원했는데, 소금의 짠 맛은 사라지고, 빛은 희미해져 간다. ‘어쩔 수 없어. 다들 그렇게 살아. 때가 되면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안주의식과 패배주의 사로잡히곤 한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던 십자가의 정신 앞으로 나아간다. 대단한 믿음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 사랑과 긍휼, 공감과 위로, 존중과 신뢰, 섬김과 희생의 가치를 가지고 삶의 자리로 들어가 예수님의 성품과 삶의 방식을 흉내낸다. 비난과 조롱과 무시와 모욕을 당했을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생명을 내어준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임에도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했는데, 하물며 죄인인 나는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겠는가? 불완전한 나는 얼마나 많은 비난과 상처를 받겠는가? 예수님은 슬픈 마음 있는 자를 찾아간다. 마음이 상한 자와 함께 한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돕는다. 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들을 보호한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선장이 되기 때문에 그 어떤 폭풍 중에도 나는 안전하고 평화하다. 최고의 위로자 예수님이 함께 울고, 안아준다. 그 사랑과 긍휼을 덧입어 삶의 자리에서 소금과 빛의 능력을 찾고 쓰임받는다. 그렇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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