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2018.02.27 11:43

분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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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의 기준”

 

쇼트트랙 여자 팀추월 결승에 출전한 한국 대표 선수들의 경기와 그 이후의 인터뷰는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경기의 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의 자세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은 곳곳에서 심한 말들을 만들어냈다. 며칠 후 그 분노유발의 선수가 여자 메스 스타트 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냈다. 경기 후 그 선수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시상식에서도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메달을 수여했다. 그 안타깝고 복잡한 상황을 바라보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다. 동시에 그 분노가 이 선수들을 이렇게 만든 감독과 연맹을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 역시 분노할 어떤 대상이 필요했나 보다. 정의의 분노가 아닌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연약한 존재이다.

 

다윗과 함께 한 육백 명의 사람들이 시글락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말렉 족속에 의해 마을 전체가 불탔고, 가족들이 포로로 잡혀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무리들은 그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고, 다윗을 향해 쏟아냈다. 그들의 분노와 원망은 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던 다윗을 죽이려 했다. 옳지 않다고 분노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분노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정의로운 분노가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열등감과 욕심을 위한 정의라는 가면일 수 있다. 정의를 외칠 때에는 진지하게 자신을 살필 필요가 있다. 개인 혹은 특정한 단체의 욕심을 위한 것은 아닌지, 자신의 연약함이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성찰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음행의 생각만으로도 실제 음행한 것이라는 높은 윤리적 수준을 요구한다. 반면에 현장에서 간음하여 죽을 위기에 있던 여인을 살리고 용서하는 긍휼을 베푼다. 상황에 따라 윤리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행함의 동기와 목적을 보면 윤리의 기준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정의와 윤리를 선택하는 기준은 곧 사람을 살리고, 회복하려는 동기와 목적에 있다. 자신의 욕심과 연약함과 열등감 그리고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정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행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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