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2021.03.31 11:32

"왜 기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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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뻐하는가?”

 

차창 밖으로 꽃잎을 날리며 환하게 미소짓는 벚꽃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 미소짓게 한다. 벚꽃만 바라보는데도 이렇게 밝아지는 마음을 보면, 코로나19로 참 오랜 시간 동안 침체된 분위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니 씁쓸하다. 다같은 마음이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짧은 영상에서 만나는 귀여운 강아지의 재롱으로 웃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만 바라보아 기분이 좋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숨 쉬고 뛸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환하게 웃고 있는가? 최근에 기분 좋게 웃어본 경험은 있는가? 지금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볍게 생각해 본다. 예쁜 옷과 멋진 엑세서리로 인해 웃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고, 기다렸던 합격 소식을 받아 행복하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을 하고 있어 기뻐한다. 반면 웃음을 사라지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 걱정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없어 절망하고, 원하는 것을 학수고대 했지만 실패해 낙심하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니 작은 믿음마저 흔들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힘을 내고 있는데 거기에다 “또 힘 내라.”고 압박을 받으니, 웃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스트레스만 더해지고, 표정은 온통 굳어 무섭게 변한다. 

 

“왜 웃고 있는지, 왜 우울한지?” 그 표면적인 이야기에서 조금 더 진지하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웃음을 선택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울을 선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정받으면 웃고, 그렇지 못하면 미소가 사라진다. 원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행복하여 자랑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면 초라한 모드로 숨는다. 이 세상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출발선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이 아닌데 훨씬 더 앞에서 출발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그것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니 그런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런 현실을 알아갈수록 웃음은커녕 분노와 좌절과 절망으로 우울해진다.

 

그러나 분노와 절망과 우울이 커질수록 진짜가 아닌 거짓에 속기 쉽다. 분노를 마치 정의라 생각하고, 절망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변명하고, 문제는 자신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외치며 합리화한다. 그런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포기하고, 타협하고, 이 사회에 적응해 가는 것도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데 잘못하고 있어 비난하지만, 그 상대 진영의 정당의 정신과 자세에는 더 동의할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과 같다. 이것도, 저것도 원하는 것은 없고, 둘 다 최선의 아닌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내가 존재함으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자리에서 견뎌내야 할 이유가 있다. 또한 그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자신의 성품과 실력을 개발하고 성장하고 있다면 그래도 그 자리에서 견뎌내야 할 이유가 있다. 이 두 개의 존재 이유가 다 충족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이 둘 중의 하나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버티고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웃으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소유와 일과 같은 표면적인 것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 웃음에서 우울로, 우울에서 웃음으로 왔다갔는 하는 폭을 줄일 수 있고, 꾸준하게 미소짓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항상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다시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던 것은 표면적인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진짜인지 확인하고, 진짜라면 그 기적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구원자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은 전혀 없었다.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에 마음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은 존재이다. 그렇게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가보자.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눅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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