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2021.11.02 12:13

은혜와 안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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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안주는 다르다”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이 가까이 왔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집중해야 할 때이다. 대입은 수시와 정시로 구분되어 있는데, 보통 수능은 정시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수능 최저 등급을 요구하는 수시 전형이 있지만, 수능은 정시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쟁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수능을 통한 정시 선발 비율은 40퍼센트이다. 지난 해까지는 30퍼센트 정도였지만, 금년에는 40퍼센트 정도에 이른다(서울의 주요대학의 경우). 그러니까 수능을 통한 정시보다 수시 전형으로 선발하는 비율이 더 크다. 아무튼 수능이 가까이 와 있는 긴장된 시기이지만 많은 학생들은 수시 전형을 지원했고, 1차 합격과 면접 그리고 최종 합격을 기다리고 있다.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학생과 부모의 마음은 간절하다. 원하는 것을 꼭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시 전형의 경우는 고등학교 3년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시험 한 번 잘 봤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 찾은 목표에 대한 분명함과 열정과 헌신이 그대로 수시 전형의 합격 여부에 반영된다. 지난 시간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며 게으르게 보냈는데, 그 노력한 내용보다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꾸준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준비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높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한 노력과 헌신과 희생으로 끝까지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대학입시만 아니라 취업, 결혼, 가정, 자녀교육 등 모든 것에서 적용된다. 부지런한 노력과 헌신의 과정에서 얻는 만족과 적당히 타협하고 즐기며 누리는 안주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늘 경계한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기득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가는 것을 깨뜨려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 적당히 타협하고 즐기며 안주하는 의식도 개혁해야 한다. 안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공정과 불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출발선이 다르고, 운동장이 기울어진 것이 현실이다.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출발할 수 있는 기회와 비빌 수 있는 언덕을 마련해 주어서 비슷한 출발선을 만들어가야 한다. 신세와 운명을 탓하며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을 멈추고 주도적으로 안주의식을 깨뜨리고 개혁하고 도전하고 기회를 찾고, 또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함께 가야 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왜 끝까지 해내고, 안주의식과 싸워가며 복잡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면서 만족하면 안 되는가?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애쓰기 보다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잡거나 편한 길을 찾아가면 안 되는가? 그럴 수 있다. 눈 앞에 보이는 편함과 만족을 선택하고 안주할 수 있다. 그런 안주하는 삶에서 만족할 수 있다. 그보다 더 고상한 인생의 목적과 가치들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과 고상한 가치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안주해 보라. 잠시는 만족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곤궁과 궁핍과 외부의 공격들로 더 큰 불안과 두려움과 고통에 직면한다. 자신의 시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 다음세대 그리고 또 다음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코 괜찮지 않다. 그래서 지금 내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불편한 자리로 들어가 헌신하며 끝까지 사명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옛날 갈렙이 가럇아르바(헤브론)의 거인들을 정복하고 끝까지 일을 해 낸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했을 때에는 그것들이 올무가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은혜는 사명과 가치들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는 과정과 열매로 누리는 영원한 만족이지만, 안주는 적당히 타협하고 편함을 추구함으로 누리는 잠시의 만족이다. 은혜를 바라며 안주하는 것은 모순이다. 은혜를 사모하기에 안주의식을 깨뜨리고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것을 선택한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 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삿 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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