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묵상나눔
2024.04.02 17:40

예수님만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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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보이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려 한다. 아니 한 대만이 아니라 두 세 대 그 이상을 보복하고자 한다. 반면에 복수할 상황이 아니거나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나친 보복을 방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제적인 법이 구약성경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법’이 아닌가. 어떻게 공의와 정의 실현과 자비와 긍휼의 실천의 균형이 가능한가? 동일한 케이스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판단하는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가. 원칙과 규칙을 있는 그대로 적용한다 해도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가슴으로는 거부하기도 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정의와 자비의 균형과 판단을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이해관계의 당사자로 서면 균형 잡기는커녕 자신의 주장과 만족에 집중하려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비를 말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를 본받아 끊임없이 닮아가며 이전보다 더욱 온전한 성품으로 성장할 뿐이지, 그 누구도 완전한 자가 없다. 그러니 선 줄로 착각하지 말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분별하여 순종한다.

 

하나님이 정의로 심판하면 그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의인은 없으니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때문이 아닌가. 힘주거나 자랑할 것이 없다.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읔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그 놀라운 사랑을 확증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고, 죄에 대한 완전한 정의의 실천이다.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사랑 안에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닫고 모든 상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한다. 마음의 생각과 태도와 말과 행동에서 예수만 보이기를 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 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신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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