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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신의 깊은 내면과 처지를 온전히 아는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남의 깊은 속사정과 상황을 온전히 알 수 있는가? 역시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어떤 선택과 행동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다 알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 선택과 행동이 낳은 결과를 보고 개인의 의견과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옳거나 최선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마치 자신의 생각이 최선이고 옳은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선하지 않다. 남을 판단하고 있는 자신도 판단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관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통한 관점을 가지고 어떤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에 오만과 편견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 악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소중한 가치와 신념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는 존중하며 그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다. 그러니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엎드려야 한다. 내 자신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소중한 것이다.

 

인생은 잘한 일도 있지만, 부끄러운 일 혹은 악한 일도 함께 공존하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과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자 하는 악한 마음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 심지어 악한 일을 간과하거나 그것으로 인한 책임과 징계를 면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심판자인 하나님은 의와 정의의 하나님이기에 그 죄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다룬다. 그 책임은 단순한 벌을 위한 벌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을 위한 것이다. 혹 징계를 받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회개하고 회복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 진정한 목적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으로 이루어간다. 하나님이 그 인생의 마지막을 평가한다. 그 마지막 평가의 기준은 공적과 실패한 일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 중심, 곧 믿음의 삶이다. 하나님이 있느냐 혹은 없느냐의 문제이다. 완벽한 믿음의 삶을 살아내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해 돌아갔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 46:28

 

 


  1. 위대한 유산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한다. 선 줄로 착각하면 언제든지 넘어진다. 그릿(Grit), 끝까지 일을 이루는 능력. 끈기(perseverance)가 중요하다. 공부해서 남을 주자. 매일의 삶이 소중하다. 고통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위기는 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면, 역경 지수를 높일 수 있다. 스트레스의 다른 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나 반나절은 푹 쉬어야 남은 날들에 몰입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은 내가 한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2년 가까이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주제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고, 아이도 그 가...
    Date2018.12.07 View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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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기에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조금만 편안하면 쉽게 안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진실하게 고백했던 그 입으로, 언제든지 자신을 자랑하고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기 위해, 겸손과 정직과 성실로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쇄신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않는 ...
    Date2018.11.30 Views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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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지막 평가의 기준

    누가 자신의 깊은 내면과 처지를 온전히 아는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남의 깊은 속사정과 상황을 온전히 알 수 있는가? 역시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누가 어떤 선택과 행동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다 알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 선택과 행동이 낳은 결과를 보고 개인의 의견과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옳거나 최선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마치 자신의 생각이 최선이고 옳은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선하지 않다. 남을 판단하고 있는 자신도 판단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관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통한 관점을 가지고 어떤 선택과 행동...
    Date2018.11.24 Views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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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믿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 없는 믿음의 역사는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믿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고 전제한다면, 믿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이다. 비록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차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로 순종할 때 그 믿음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도 그것을 모른 척 외면하고 불순종의 길로 가기에 믿음...
    Date2018.11.22 View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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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적응력의 성장과 믿음의 성장은 비례한다

    슬픔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수 있다. 불편한 곳도 편안한 곳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수 있다. 그때의 적응, 적응력은 단순한 익숙함과 다르다. 적응력은 안주하는 것과 다르다. 적응력은 무기력과 무의미한 것과 다르다. 적응력은 원망과 불평 그리고 변명과 자기합리화와 다르다. 적응력에는 생명력이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다. 상황을 받아들일 때 적응력은 감사와 긍정의 능력을 일으킨다. 생명력, 움직임, 감사와 긍정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용기로 그리고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계의 확장으로 나타난다. 그런 적응력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Date2018.10.19 Views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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