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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일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데, 정말 그럴까? 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을까?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광야에서 헤매야 할까? 그만 고난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왜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갈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여전히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는 일마다 왜 그렇게 안될까? 왜 나만 고난을 당해야 할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왜 이런 고통을 감당해야 할까?” 이런 의심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누가 봐도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 자신도 고통 중에 있으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이들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 동시에 이해할 수 없어 의아해 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지? 어떤 사람은 병고침을 받아 교회 나와 신앙생활하는데, 어떤 사람은 병고침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에 나와 열심히 신앙생활한다. 전자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는데, 후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율과 함께 자연스럽게 겸손하게 낮아진다. 비록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병고침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평안한 삶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고난이 쉬운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힘겨운 삶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고난은 누구나에게 찾아오고, 누구나 의도하지 않은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 예수의 제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예수의 제자는 의심과 두려움, 원망과 분노가 전혀 없이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의 제자라 할지라도 의심과 두려움이 있다. 원망과 분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 앞에 나아간다. 의심과 두려움, 원망과 분노의 마음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에게 나아간다. 비록 여전히 의심과 두려움 마음이 있지만, 그 발걸음은 하나님을 향해 간다. 100퍼센트의 완벽한 삶이 아닌 연약하고 넘어진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 그것이 제자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다. 그렇게 조금 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한다.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신 28:67


  1. 은혜로다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거나 힘겨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세 가지이다. 첫째,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것, 힘든 상황들은 적당히 피하고, 외면 하는 것은 제일 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편할 수 있지만 그곳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쉬울 순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해야 얻을 수 있는 인격적 성숙과 삶의 지혜는 줄 수 없다. 두번째 옵션은 장애물 앞에 캠프를 치고 머무르는 방법이 있다. 장애물 극복을 위해 도전하기는 두렵고, 도망가는 것은 더 싫고 하니,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머무르며 기회를 잡고자 하지만, 그 희망은 빛은 점점 사라진다. 계속해서 그 제자리에 머물...
    Date2018.07.20 View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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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트레스의 괜찮은 면

    지금까지 스트레스에 대한 이해로 볼 때,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악화, 가족의 위기와 같은 힘겨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해롭게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망확률이 43%나 높게 나왔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또 다른 보여주는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가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사람에게는 사망확률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에 대한 생각과 믿음에 따라 그것이 해롭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 심리학자 켈리 맥고나걸은 이 실험 결과에 주목하고 스트레스의 좋은 면에 대해서 연구 했고, 스트레스의 괜찮은 면을 이야기 한다(켈리 맥고나...
    Date2018.07.14 View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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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생각의 전환

    "생각의 전환" 작은은 것보다 큰 것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의 인정과 거리가 먼 작은 것보다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큰 일에 줄을 선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작은 일에는 소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큰 일에는 충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큰 일에 충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똑같다. 아니 작은 일, 큰 일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분의 기준은 언제든지 맡겨진 그 일에 정직과 성실로 충성하는 것이다. 그 충성에 대한 칭찬도 똑같다. 세계관이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큰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
    Date2018.07.07 Views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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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평화와 풍요로운 삶에 익숙하면 그것에 안주하기 쉽다. 이전보다 더 겸손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불편한 자리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주의식에 사로집히기 쉽다. 그래서 평화와 풍요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보다 그러한 삶에서 진짜 믿음과 겸손함으로 살아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평화와 풍요로운 삶에서만 안주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가난의 불편한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또한 익숙해지면 그 고통의 불편함에 안주한다. 견뎌내어 도전하기 보다 쉽게 포기하고 안주한다. 고통의 불편함에 안주하는 인생에는 감사와 찬양을 밀어내고 불평과 원망 그리고 비교의식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고난이 모든 사람에게 ...
    Date2018.06.29 Views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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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의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일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데, 정말 그럴까? 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을까?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광야에서 헤매야 할까? 그만 고난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왜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갈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여전히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는 일마다 왜 그렇게 안될까? 왜 나만 고난을 당해야 할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왜 이런 고통을 감당해야 할까?” 이런 의심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누가 봐도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 자신도 ...
    Date2018.06.22 Views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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