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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풍요로운 삶에 익숙하면 그것에 안주하기 쉽다. 이전보다 더 겸손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불편한 자리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주의식에 사로집히기 쉽다. 그래서 평화와 풍요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보다 그러한 삶에서 진짜 믿음과 겸손함으로 살아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평화와 풍요로운 삶에서만 안주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가난의 불편한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또한 익숙해지면 그 고통의 불편함에 안주한다. 견뎌내어 도전하기 보다 쉽게 포기하고 안주한다. 고통의 불편함에 안주하는 인생에는 감사와 찬양을 밀어내고 불평과 원망 그리고 비교의식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고난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통해서 깨닫고 그것을 새로운 도전과 성장의 기회로 삼을 때 실패가 의미 있는 것처럼, 고난을 통해 진실을 깨닫고 그 고난이 디딤돌이 되어 성장할 때 비로소 고난은 가치 있는 것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금 여기에서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평화와 풍요로운 삶이든 혹은 고통과 가난의 불편한 삶이든 간에, 그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한다. 평화와 풍요의 자리에 안주하며 하나님이 없이 교만하게 살아가는 것은 진짜 축복이 아니다. 평화와 풍요의 자리에서 이전보다 더 겸손히 엎드리고 자발적으로 불편한 자리로 들어가 사람들을 섬길 때, 그 삶은 진짜 축복이다. 그것은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고난과 가난의 불편한 자리에 안주하며 원망과 불평 그리고 삶을 저주하고 포기하면, 그 역시 불행한 인생이다. 그러나 고난과 가난의 불편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견뎌내는 삶, 그곳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인생은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그 역경의 시간은 인격과 실력을 단단하게 한다. 그 고난과 가난의 불편함은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다. 고통의 아픔과 불편함이 불행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평생토록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신 32:21~22


  1. 은혜로다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거나 힘겨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세 가지이다. 첫째,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장애물을 피해 다니는 것, 힘든 상황들은 적당히 피하고, 외면 하는 것은 제일 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편할 수 있지만 그곳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쉬울 순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해야 얻을 수 있는 인격적 성숙과 삶의 지혜는 줄 수 없다. 두번째 옵션은 장애물 앞에 캠프를 치고 머무르는 방법이 있다. 장애물 극복을 위해 도전하기는 두렵고, 도망가는 것은 더 싫고 하니,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머무르며 기회를 잡고자 하지만, 그 희망은 빛은 점점 사라진다. 계속해서 그 제자리에 머물...
    Date2018.07.20 View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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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트레스의 괜찮은 면

    지금까지 스트레스에 대한 이해로 볼 때,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악화, 가족의 위기와 같은 힘겨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해롭게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망확률이 43%나 높게 나왔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또 다른 보여주는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가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사람에게는 사망확률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에 대한 생각과 믿음에 따라 그것이 해롭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 심리학자 켈리 맥고나걸은 이 실험 결과에 주목하고 스트레스의 좋은 면에 대해서 연구 했고, 스트레스의 괜찮은 면을 이야기 한다(켈리 맥고나...
    Date2018.07.14 View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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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생각의 전환

    "생각의 전환" 작은은 것보다 큰 것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의 인정과 거리가 먼 작은 것보다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큰 일에 줄을 선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작은 일에는 소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큰 일에는 충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큰 일에 충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똑같다. 아니 작은 일, 큰 일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분의 기준은 언제든지 맡겨진 그 일에 정직과 성실로 충성하는 것이다. 그 충성에 대한 칭찬도 똑같다. 세계관이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큰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
    Date2018.07.07 Views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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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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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8.06.29 Views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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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의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일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데, 정말 그럴까? 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을까?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광야에서 헤매야 할까? 그만 고난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왜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갈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여전히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는 일마다 왜 그렇게 안될까? 왜 나만 고난을 당해야 할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왜 이런 고통을 감당해야 할까?” 이런 의심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누가 봐도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 자신도 ...
    Date2018.06.22 Views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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